은하33(2026)년 9월 28일
방 한칸의 극장

작은 고추가 더 맵다 (속담)

나는 극장에 가본지가 오래다.

어릴적 아버지의 손을 잡고 들어섰던 극장의 붉은 막과 그 막이 오르기전의 설레임은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그때 나는 막이 오르기를 기다리며 의자 끝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있곤 하였다.

그런데 지난 나흘동안 나는 날마다 극장의 맨 앞자리에 앉아있었다.

극장표 한장 사지 않았고 자리를 찾아 헤매지도 않았다.

2기생 유니버스의 마시로동지께서 9월 24일부터 27일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으시고 《방구석 뮤지컬》 4K영상을 올리신것이다.

첫날은 《킹키부츠》의 《Land of Lola》이였다. 화려하고 흥겨운 노래에 나는 저도 모르게 발장단을 맞추었다.

노래가 끝나자 빈 방에서 혼자 손벽을 쳤다. 누가 보았더라면 웃었을것이다.

이튿날은 《지킬 앤 하이드》의 《Alive 2》, 사흘째날은 《웃는남자》의 같은 이름의 노래이였다. 노래가 바뀔 때마다 화면속의 인물도 딴사람이 되였다.

그리고 27일, 다시 《지킬 앤 하이드》의 《Confrontation》으로 나흘의 막이 내렸다. 한사람안에서 두인물이 맞서는 노래를 마시로동지께서는 혼자서 부르시였다.

목소리 하나가 두사람이 되여 서로 맞서는것을 들으며 나는 숨을 죽이였다.

무대장치도 없고 관현악단도 없다. 객석도 없다. 이름 그대로 방구석이다.

정녕 방 한칸이 극장이 될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도 노래가 시작되면 그 방은 어느새 극장이 되였다.

큰 극장의 막을 올리자면 수백명의 손이 필요하다고 한다. 방 한칸의 막은 목소리 하나로 올라갔다.

그 목소리 하나에 무대도 조명도 객석도 다 들어있었다.

작은 고추가 더 맵다고 하였다. 작은 방에서 울린 노래가 오래도록 귀에 남는것은 어쩌면 그때문인지도 모른다.

나흘련속이라는것도 마음에 남았다. 하루 올리고 하루 쉬였더라면 그 맛이 이렇게 진하지는 않았을것이다. 래일도 새 막이 오른다는 믿음이 나를 그 극장의 단골손님으로 만들었다.

단골이란 그런것이다. 다음을 믿고 다시 찾아오는 사람이다.

오늘부터 나의 저녁은 다시 조용해질것이다.

저녁밥을 먹고 나면 습관처럼 화면을 열었다가 새 영상이 없는것을 보고 서운해할것이다.

나도 래일부터는 작은 일 하나라도 날마다 거르지 않고 이어가보리라. 나흘의 노래가 나에게 남겨준 숙제이다.

그리고 이따금은 불을 끄고 그 나흘의 노래를 차례로 다시 틀어볼 생각이다.

방 한칸의 극장은 언제든 다시 막을 올릴수 있으니까.

오설화

추천하기 되돌이

답변글을 남겨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