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33(2026)년 10월 17일
전날밤

10월 16일 금요일 저녁, 은별이네 집 거실에는 일찍부터 불이 환하게 켜져있었다.

중학교 2학년인 은별이는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가방을 내려놓기 바쁘게 오빠의 방문을 두드렸다.

《오빠, 다섯시야! 유니동지랑 후야동지 영상 올라왔어!》

대학 과제를 하던 은철은 못이기는척 의자를 돌렸다.

화면에는 유니동지의 《4기생이 나와도 변하지 않는 것》과 후야동지의 《후야의 4기생 심층분석!》이 나란히 올라와있었다.

두오누이는 쏘파에 나란히 앉아 영상을 차례로 보았다.

쏘파앞 탁자우에는 은별이가 학교에서 그려왔다는 그림 한장이 놓여있었다.

깊고 푸른 바다밑에서 네개의 작은 빛이 떠오르는 그림이였다.

《미술시간에 그렸어. 선생님이 무슨 그림이냐고 물으셔서 래일 떠오르는 빛이라고 했지.》

《제법인데.》

오빠의 칭찬에 은별이는 어깨를 으쓱하였다.

《선배들도 다들 기다리는구나.》

은철이 중얼거리자 은별이가 손가락을 꼽았다.

《타비동지도, 리코동지도, 시부키동지도 다 후배 이야기 영상을 올리셨어. 이번주 내내 그랬다니까.》

은별이는 책상서랍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왔다.

첫장에는 또박또박 네개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시즈키 토아, 코가네 랑, 하나요 히요리, 토키노 메리.

그 아래에는 날자와 시간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17일 오후 5시, 6시. 18일 오후 5시, 6시.

《이거 봐. 래일하고 모레 시간 다 적어놨어.》

《그래, 그래. 벌써 열번은 보여줬다.》

은철이 웃으며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은철이 처음 스텔라이브의 방송을 본것은 대학에 들어가던 해인 은하31(2024)년이였다.

3기생 클리셰의 네성원이 한날에 데뷔하던 5월의 그날, 소학생이던 은별이는 오빠의 어깨너머로 화면을 기웃거리군 하였다.

그런 동생이 이제는 제 손으로 날자와 시간을 적어가며 새 기수를 기다리고있었다.

(세월이 참 빠르구나.)

그런데 은별이의 얼굴이 문득 어두워졌다.

《근데 오빠, 래일 나 손풍금 발표회 있잖아.》

《몇시인데?》

《오후 세시. 끝나면 네시반은 될거야. 집까지 오면…》

은별이는 말끝을 흐렸다.

발표회장에서 집까지는 뻐스로 사십분이 넘게 걸렸다.

(늦으면 어쩌지…)

은철은 잠시 생각하더니 손전화기를 꺼내 무엇인가 찾아보았다.

《걱정 말아. 래일 오빠가 발표회장앞에서 기다릴게. 끝나자마자 택시를 타면 다섯시전에는 넉넉히 닿아.》

《정말?》

《대신 발표회에서 틀리지 말고 잘해야 돼.》

은별이의 얼굴이 금세 해바라기처럼 활짝 피여났다.

저녁상에 둘러앉자 아버지가 수저를 들며 물었다.

《너희들 요즘 무슨 일로 그렇게 들떠있냐? 래일 무슨 배라도 뜨는거냐?》

《배가 아니라 어비스예요, 아버지. 4기생이요.》

은별이가 볼이 미여지게 밥을 넣은채 대답하자 어머니가 웃음을 참지 못하였다.

《어비스라니, 아버지가 들으시기엔 꼭 배이름같구나.》

아버지는 영문을 모르겠다는듯 머리를 긁적이다가 이내 함께 웃고말았다.

어머니가 은별이의 밥그릇에 반찬을 얹어주며 물었다.

《그래, 넷가운데 누구를 제일 응원하니?》

《그런게 어디 있어요. 다 응원하지요.》

은별이의 똑 부러지는 대답에 아버지가 껄껄 웃었다.

《그럼 래일 저녁은 아버지가 차리마. 너희들은 화면앞에서 꼼짝 말고 있거라.》

여섯시가 되자 두오누이는 다시 화면앞에 앉았다.

히요리동지의 첫 커버곡 《유령이 되고싶어》가 올라왔다.

조용히 시작되는 노래에 은별이는 숨소리까지 죽였다.

노래가 끝나도 한동안 두사람은 아무 말이 없었다.

《…곱다.》

은별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은철은 동생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노래를 듣는 동안 은별이의 눈은 화면에서 한번도 떨어지지 않았다.

한시간뒤 일곱시에는 메리동지의 《도꾜 테디베어》가 올라왔다.

이번에는 은별이가 어깨를 들썩이며 박자를 맞추었다.

《이 노래는 신나서 손풍금으로도 쳐보고싶어.》

《발표회가 끝나면 그때 실컷 쳐봐라.》

《어제는 토아동지랑 랑동지, 오늘은 히요리동지랑 메리동지. 이제 네사람 노래를 다 들었어!》

은별이는 어제 들은 《제륙감》과 《호랑풍류가》를 다시 틀어놓고 네노래를 차례로 이어 들었다.

은철은 동생의 수첩을 넘겨보다가 마지막 장에 적힌 수자들을 발견하였다.

4만5762, 4만5871, 4만3867, 4만6267.

《이건 뭐야?》

《치지직 팔로워 수. 오늘 적은거야. 11일에는 다 1만7천명대였는데.》

은철은 혀를 내둘렀다.

닷새사이에 두배반이 넘게 늘어난것이다.

《래일 이 사람들이 다 같이 보는거야. 오빠, 래일 정말 늦으면 안돼.》

《알았다니까.》

은별이는 래일 방송이 시작되면 첫 인사를 들은 느낌을 적어두겠다며 수첩의 새 장을 펼쳐보였다.

새하얀 종이 맨 우에는 벌써 《10월 17일》이라는 날자가 큼직하게 적혀있었다.

밤이 깊어 은별이가 제 방으로 들어간 뒤에도 은철은 한동안 거실에 앉아있었다.

동생의 방에서는 래일 발표회에서 칠 손풍금곡을 마지막으로 한번 더 련습하는 소리가 가늘게 새여나왔다.

창밖에는 가을바람이 가로수잎을 흔들고있었다.

(이 애가 처음 학교에 가던 날도 저렇게 들떠있었지.)

은철은 손전화기에 래일 오후 네시반에 울릴 시계를 맞추어두었다.

그리고 발표회장에서 집까지 택시가 달릴 길을 지도에서 다시한번 짚어보았다.

이윽고 손풍금소리가 그친 동생의 방문 틈으로 새여나오는 작은 노래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거실의 불을 껐다.

서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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